전력 부족을 전제로 공급부터 늘릴 것이 아니라, 수요의 불확실성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산업 수요와 연결할 전력체계를 제시하는 것이 12차 전기본의 과제다


오늘 8월 26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에서 재생에너지 보급 전망을 주제로 대국민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 지난 20일에는 수요 재전망이 발표되었고, 첨단산업 전력수요 전망이 몇 달 새 6배 뛰었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이른바 메가프로젝트가 그 원인이다. 그 결과 정부 안팎에서는 화석연료를 비롯한 대형 발전기 증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전력수요전망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대형 발전원 확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둘이다. 이 수요는 얼마나 확실한가. 그리고 그 수요는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실하다. 메가프로젝트의 규모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12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의 수요전망소위조차 AI 데이터센터 투자계획의 불확실성을 인정해 일부 수요만 반영했다. 용인과 호남의 반도체 수요도 언제 바뀔 지 모르는상황인데, 산업계가 요구하는 예측 수요를 전량 반영했다. 다시 말해 전력계획은 아직 실현 여부와 시점이 불확실한 산업계 수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상태다.
수요 전망은 몇 달 만에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첨단산업 전력수요 전망은 불과 수개월 만에 수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반면 발전설비는 한 번 건설되면 20~30년 동안 운영되며 비용을 회수한다. 변동 가능한 전망을 근거로 장기간 운영될 발전설비를결정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전력수요 증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불확실한 수요 전망이 곧바로 LNG 등 대형발전기 증설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요가 불확실할수록 장기간 규모가 고정되는 대형 발전설비보다 단계적으로 증설·조정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발전원 확대가 예측오차에 대응하기 유리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지난 18일 12차 전기본과 관련해 "불가피하게 가스발전이 일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민보고회 자리에서 직접 LNG 열병합발전을 요청했다. 전력수요가 늘었으니 대형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새 전력수요가 발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새 대형 발전소부터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이미 확보된 재생에너지를 왜 그 수요와 연결하지 못하고 있는가다.
메가프로젝트 일부가 들어서는 호남에는 이미 약 10GW 규모의 재생에너지가 운영 중이고,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 계통 연계를앞둔 설비가 32GW 규모다. 그러나 이 설비들은 아직 전력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호남 일대에 전력 수요 부족을 이유로,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는 전력망이 준공되는 2032년 이후에 접속하는 조건으로만 허가를 내주고 있다. 한쪽에서는전력수요 증가를 이유로 대형 발전소 건설을 검토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준비된 재생에너지 계통 접속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호남 메가프로젝트의 입지는 산업·균형발전 등 여러 요인이 고려된 결과이다. 호남 입지가 갖는 보다 중요한 정책적 의미는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산업 수요와 연결하는 것에 있다. 대통령도 여러 차례 호남을 RE100이 가능한 입지로 언급했다. RE100은 선언이 아니라 조달 실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요건이고, 그 실적은 계통에 연결된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 메가프로젝트의 수요를이유로 전력계획을 다시 쓰면서, 정작 그 프로젝트가 서는 곳의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계획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여기서 반론을 제기한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24시간 안정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반도체 공장을 감당할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도체 팹의 안정성은 특정 발전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전체 계통이 얼마나 강건하게 운영되는가에 달려 있다. 계통은 ESS, 가상발전소(VPP)와 같이 변동을 흡수하는 유연성 자원들은 활용한다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새 발전소처럼 부지 확보와 인허가, 건설에 수년을 들이지 않고도 계통에 투입할 수 있으며, 수요 변화에 맞춰 그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는 안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전제일 뿐이다.
이번 이슈는 특정 프로젝트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재생에너지를 계획의 중심에 놓아본 적이 없다는 문제를드러낸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2030년 목표치를 다 채운다고 가정해도 OECD 최하위권에 머문다. 2017년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이후 재생에너지 목표는 계획을 거듭할 때마다 미달되거나 하향 조정돼 왔지만, 대형 발전설비는 계획된 대로 들어섰다. 전기본이 목표 설비예비율을 정하고, 그 예비율을 채울 설비 규모를 계산해 대형 발전기로 메우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보급 지연은 반복적으로 "재생에너지로는 안 된다"는 근거로 인용되어 왔다.
정부는 10월까지 정부안을 마련하고, 연내 최종안을 확정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미 있는 재생에너지를 두고 새 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에는 답해야 할 질문이 남는다.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이 낼 전기요금과세금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지어진 대형발전 설비는 20~30년을 가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우리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감축목표를 저버리는 일이 된다.
우리는 정부에 요구한다.
첫째, 산업계의 희망사항을 무비판적으로 반영하는 현재의 전력 수요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불확실한 수요를 근거로 과잉발전·송전설비를 계획하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 수요전망의 산출 근거와 심의 자료를 공개하고, 전망이 빗나갔을때 그 설비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원인자 부담 원칙을 명시하라.
둘째, 불확실한 메가프로젝트 수요는 LNG를 포함한 대형 발전원 확대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계통 운영에방해가 되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위반되는 대형 발전기의 확대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늦출 뿐이다.
셋째, 메가 프로젝트가 설령 계획대로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그 수요는 모두 재생에너지에 기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요관리·유연성 자원 확충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중심의 조달 계획을 먼저 검토하라.
2026년 8월 26일
기후솔루션,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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