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수요를 이유로 한쪽에서는 LNG를 늘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폐지할 석탄을 남긴다면 12차 전기본의 ‘에너지 대전환’은 무엇을 전환하는 계획인가
메가프로젝트 수요 전망이 화석연료 발전 유지 명분 되어선 안 돼
전력 부족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활용 가로막는 전력시스템 개선해야…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의 방향 분명히 해야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한쪽에서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메가프로젝트를 반영해 미래 전력수요를 크게 높여 잡고, 다른 한쪽에서는 폐지 대상 석탄발전을 ‘안보전원’이라는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나는 신규 화석연료 발전설비 확대의 압력으로, 다른 하나는 기존 석탄발전 폐쇄 지연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이 두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부가 내세운 에너지 대전환은 미래의 불확실한 수요를 이유로 과거의 화석연료 발전원과 전력시스템을 유지하는 계획에 머물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첨단산업의 전력수요에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재전망에서 2040년 연간 목표 전력소비량은 불과 넉 달 전보다 약 190TWh 증가했다.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와 가동 시점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제12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의 수요전망소위도 AIDC 투자계획의 불확실성을 인정해 일부 수요만 이번 계획에 반영했다. 반도체 역시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만큼, 현재 제시된 전망에 맞춰 발전·계통 설비를 선제적으로 고정하기보다 투자 현실화 정도와 수요 변화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복수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높아진 수요 전망을 중심으로 발전설비를 계획한다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미래 수요가 신규 화석연료 발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12차 전기본은 수요가 예상보다 적게 늘어나는 경우까지 함께 검토하고 실제 투자 진행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지난 18일 12차 전기본과 관련해 “불가피하게 가스발전이 일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일 석탄발전을 ‘안보전원’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안’은 또 다른 우려를 낳는다. 석탄발전소 폐지 지역과 노동자를 지원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뒷받침하는 법의 취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2040년 탈석탄을 선언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전력수급과 계통 안정을 이유로 폐지 대상 석탄발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예외를 열어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미래 전력수요 증가가 안보전원 존치의 근거로 활용된다면, 2040년 탈석탄 약속은 사실상 흔들릴 수 있다. 이 우려는 단순한 가정에 그치지 않는다. 메가프로젝트에 포함된 일부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2040년 폐지 대상인 석탄발전소 인근에 추진되고 있으며, 이러한 신규 전력수요가 석탄발전 가동률을 높이고 발전소 유지의 빌미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계통과 시장의 병목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늘어난 전력수요에 신규 대형 발전설비를 추가하고, 기존 석탄발전까지 예비자산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에너지 대전환의 방향은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12차 전기본은 발전소를 얼마나 더 확보할 것인지를 먼저 계산하는 계획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주력 전원으로 확대하고 ESS, 수요관리, VPP 등 유연성 자원을 전력수급과 계통 운영의 핵심 수단으로 끌어올리는 계획이어야 한다. 미래 수요 증가를 LNG 발전 확대나 폐지 대상 석탄발전의 존치 근거로 삼는 대신, 그 수요 자체를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체계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전력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과 그렇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으로 수십 년간 운영되는 화석연료 발전을 더 짓고, 폐지할 석탄발전까지 더 오래 남겨야 한다는 결론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는 단기간에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확대하고, 여기에 맞춰 유연한 전력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40도를 넘어선 폭염과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는 기후위기 시대 화석연료로부터 더 빠른 이별을 촉구하고 있다. 12차 전기본은 불확실한 수요에는 유연하게 대응하고, 탈석탄 시점을 앞당기거나 최소한 2040년이라는 기존 약속은 흔들림 없이 지키며, 재생에너지가 실제로 늘어나 산업 수요와 연결될 수 있는 미래의 전력 시스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미래 산업을 이유로 과거의 발전원과 시스템을 유지하고 화석연료 발전을 더해 막대한 경제적·환경적 부채를 떠넘기는 계획을 에너지 대전환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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