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31 사전협상 주요 쟁점 정리
오는 11월, 전 세계 200여개국 대표단이 모이는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1)가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립니다.
‘전 세계 조별과제’라고도 불리는 이 최대 규모의 기후총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사전협상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회의’(SB)인데요, 지난 18일 막을 내렸습니다. 논의를 짧게 요약하자면, 결국 ‘돈 싸움’이었습니다. 선진국은 기후 재원 논의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개발도상국은 기후 재원 없이는 기후 행동도 불가능하다고 반발했습니다. 그 결과 자정이 넘는 협상에도 대부분 ‘빈손’에 그쳤습니다.
이번 미디어킷에선 사전협상의 핵심 쟁점을 정리하여, 오는 11월 COP31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지 안내드리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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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SB란 무엇인가
매년 11월 열리는 COP(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전에, 유엔기후변화현약의 당사국들은 독일 본(Bonn)에서 부속기구회의(Subsidiary Bodies)라고 부르는 중간 협상 회의를 개최합니다.
지난 18일, 64번째 회의(SB64)가 막을 내렸으며 오는 11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릴 COP31의 전초전 역할을 했습니다.
논의의 결과물은 크게 두 층위 (tier)로 나뉩니다. 각국 정부가 조약 문서에 합의하는 공식 협상 트랙, 그리고 의장국 주도의 이니셔티브·선언·로드맵 등 액션 어젠다입니다. 이번 회의는 특히 협상 트랙에서 기대 이하의 결과를 냈습니다.
SB64 결과
1. 핵심 결과 요약
각국 대표단은 SB64 결과에 강한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습니다.
감축을 논의하는 유일한 전용 공간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없었고, 적응 목표 협상은 자정 무렵까지 이어지다 결렬됐으며, 폐막 본회의는 오후 10시에야 시작됐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전지구 적응 목표(GGA) 협상이 끝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Rule 16—다음 회의로 자동 이관—이 적용된 것이었습니다.
배경에는 세계적인 지정학 위기와 생활비 상승, 그리고 선진국들의 해외개발원조 삭감이 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재원 지원 없이는 기후행동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더욱 강하게 표명했고, 이것이 대부분 협상의 공통 갈등 요인이 됐습니다.
2. 쟁점별 분석
① 기후 재원 — 모든 갈등의 근원
선진국과 개도국의 대립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분야입니다.
개도국들은 파리협정 제9조1항—선진국의 개도국 기후재원 의무 조항—을 별도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지난해 열린 COP30의 주최국인 브라질 의장단 역시 이 의제 포함을 촉구하는 서한을 UNFCCC 사무국에 직접 발송했지만, 선진국들은 ‘협상 절차 위반‘이라며 반발했습니다.
COP30에서 3,0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기후재원 목표(NCQG)와 적응 재원 3배 확대에 합의했음에도, 몇 달도 안 돼 그 이행 경로를 두고 균열이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녹색기후기금(GCF), 적응기금(AF) 등 다자 기후기금의 이사회 구성과 전환 방식을 두고도 선진국과 개도국이 충돌했습니다.
COP31 전망: 의제 채택 자체부터 싸움이 예상됩니다. 이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COP31 첫날부터 의사진행 분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② 적응과 손실·피해 — 가장 극적인 결렬
기후위기 피해에 대응하는 '적응'과 '손실·피해(Loss & Damage)' 논의는 이번 회의의 가장 뚜렷한 실패 사례입니다.
적응
COP30에서 약속한 '적응 재원 3배 확대'를 협상 문서에 명시하느냐를 두고 선진국과 개도국이 충돌했습니다. 개도국들은 이 문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고, 선진국들은 재원 논의는 별도 트랙에서 하자며 기술적 논의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석대표 협상이 자정 가까이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실패했으며, Rule 16(다음 회의 이관)이 적용됐습니다.
손실·피해
손실·피해는 더 심각합니다. SB64에선 손실과 피해를 위한 전용 의제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몰 위기에 처한 태평양 도서국, 홍수와 가뭄으로 수확을 잃은 아프리카 농촌 공동체들의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것입니다. 손실·피해 대응 기금(FRLD)은 오는 7월 마닐라에서 첫 번째 자금 지원을 승인할 예정이지만, 재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③ 감축 — 논의 공간 자체가 위협받다
온실가스 감축 논의를 위해 설계된 감축 작업 프로그램(MWP)은 존속 여부 자체를 COP31로 넘겼습니다.
유럽·군소도서국·최빈개도국 등은 더 야심 찬 감축 논의를 원했고, 중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가 속한 개발도상국 협력 그룹(LMDC, Like-Minded Developing Countries)과 아랍 그룹은 현행 방식 유지를 선호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프로그램이 각국의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상향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MWP가 약화되거나 폐지되면, 2030년 이후 NDC 목표 강화를 위한 국제적 압력 메커니즘이 사라집니다.
④ TAFF 로드맵 —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공감
SB64에서 COP30 브라질 의장국은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AFF) 로드맵에 대해 100건 이상의 국가 제출 의견을 확보했다고 밝히며 분위기가 개선됐다고 자평했습니다. 오는 7월 TAFF를 위한 3개 분과가 공식 출범하고, 11월 COP31에서 로드맵을 공식 발표하겠다는 전략입니다.
TAFF 로드맵은 2023년 두바이 COP28에서 처음 합의된 "화석연료 전환" 약속을 실제 이행 계획으로 연결하기 위해 브라질이 설계한 로드맵입니다.
지난해 COP30에서 TAFF 공식 채택이 무산된 이후, 브라질은 결국 협상 트랙과 별개의 ‘의장국 주도 로드맵’을 추진하기로 했고, 4월 네덜란드, 콜롬비아와 함께 콜롬비아 산타 마르타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에 각국은 지난 3월 해당 로드맵에 대한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한국 역시 공식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입니다. 계통 개선·전환금융 등 정책 설계·지역사회 이익 공유 등의 방안이 담겼으나, 구체적인 화석연료 감축 시점과 목표 수치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록 참고)
문제는 이 로드맵이 여전히 브라질의 프로젝트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COP31 의장단인 터키와 호주가 명시적인 지지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고,
아프리카 그룹(AGN)은 형평성을 중심에 놓은 'ETAFF'로 재편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 협력 그룹(LMDC)·아랍 그룹은 아직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관심이 특히 저조하고, 로드맵 안에 재원 조달 구조도 아직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⑤ 무역·탄소국경 — 새로운 분쟁 전선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무역 연계 기후 조치를 UNFCCC에서 다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개도국들의 요구가 이번 회의에서 처음으로 뚜렷하게 표출됐습니다.
반면, EU·미국 등 선진국은 이 논의를 UNFCCC 밖에서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공식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고, COP31에서의 본격 논의가 예고됩니다.
⑥ GST2와 IPCC 간 과학 분쟁 —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싸움
이번 SB64에선 2028년 완료될 두 번째 글로벌 이행 점검(GST2) 준비도 시작됐습니다.
GST는 파리협정이 설계한 '자기검진' 장치로, 각국이 제출한 감축 목표와 실제 이행 실적을 5년마다 한자리에 모아 비교·평가하고, 다음 목표를 더 높이 설정하도록 압박하는 구조입니다.
첫 번째 점검(GST1)은 2023년 두바이 COP28에서 마무리됐고, 그 결과가 "현재 각국의 목표로는 1.5도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경고였습니다.
사무국이 전체 일정 로드맵을 제시했고, 전반적으로 환영 분위기였지만 두 가지 핵심 균열이 드러났습니다.
첫 번째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 감축뿐 아니라 적응, 손실·피해, 정의로운 전환, 무역, 이행 수단(재원·기술·역량)을 GST2에 얼마나 강하게 포함할지를 두고 이미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두 번째는 IPCC 제7차 평가보고서(AR7)를 GST2에 반영할 것인가로, 더 근본적입니다.
- 표면적으로는 일정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후 협상에서 과학의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개발도상국 협력 그룹(LMDC)은 "어떤 정보 출처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중립처럼 들리지만, 실질적으로는 IPCC 보고서가 GST2에서 특별한 권위를 갖는 것을 막겠다는 의미입니다.
- 중국은 AR7 완성 일정을 GST2에 맞추기 위해 서두르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군소도서국, 최빈개도국, EU, 중남미·카리브해 연합(AILAC) 등은 COP30 결정문을 근거로 IPCC의 역할을 GST2에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 이 논쟁의 실질적 결과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AR7이 GST2에 반영되지 않으면, 각국의 차기 NDC 목표 설정에서 과학에 기반한 상향 압박이 약화되고, 결국 1.5도 목표 달성 가능성도 낮아집니다.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 우려점
이번 회의에서 드러난 가장 우려스러운 신호 중 하나는 COP31 의장단의 조율 부재입니다.
COP31은 구조적으로 이례적인 이원 체제입니다. 튀르키예가 개최국 의장을 맡고 호주가 협상 의장을 맡습니다. 행사를 주최하는 나라와 협상을 이끄는 나라가 다르기 때문에, 두 나라의 긴밀한 조율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SB64에서 드러난 것은 두 나라가 각자의 우선순위를 갖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튀르키예는 "2035년까지 최종 에너지 소비의 35%를 전력으로" 라는 전기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야심 찬 목표지만, 일부에서는 이것이 화석연료 전환(TAFF) 논의를 '전기화'라는 좁은 틀로 치환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전기화가 곧 탈탄소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주재할 정상회의의 정치적 비전을 아직 밝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튀르키예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중동을 잇는 '북-남, 동-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이지만, 그 잠재력을 아직 활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호주는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협상 의장국으로서 각국 그룹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며 의견을 청취했지만, 협상 전반에 대한 자국의 우선순위나 비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TAFF 로드맵 지지 의사도 없었고, 감축·적응·손실·피해 어느 분야에서도 뚜렷한 입장 표명이 없었습니다. 브라질은 TAFF 논의에서 호주보다 튀르키예와 훨씬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호주가 이 로드맵을 협상 트랙 밖 이슈로 보고 거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SB64 공식 브리핑에선 이를 두고 "호주가 COP31 계획에 대해 더 명확하고 공개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안탈리아에서의 의제 채택과 협상 시작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직접 촉구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정: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릴 수석대표(HoD) 회의가 COP31 전 마지막 실무 조율 창구입니다. 이 자리에서 호주가 여전히 모호한 입장을 유지한다면, COP31 개막과 동시에 의제 채택부터 난항이 예상됩니다.
한국에의 함의
한국은 2028년 개최될 COP33의 유치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순환 개최 원칙에 따라 COP33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열리게 됩니다.
유력 후보였던 인도가 지난 4월 유치를 포기하면서 한국이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이미 여수, 포항과 같은 지자체에선 COP33 유치를 위한 전략 수립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국내 유치는 아직 단언할 수 없습니다. 이번 SB64에서는 일부 다른 국가들도 유치 관심을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COP33은 두 번째 글로벌 이행 점검(GST2)이 마무리되는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합니다.
GST2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평가 기준이 이미 바뀌고 있습니다.
기존의 탄소중립 선언에서 나아가 재생에너지의 보급 속도, 전기화, 산업 탈탄소화 등 측정 가능한 실제 성과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주요 아시아 경제국을 향한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입니다.
결국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후 리더십을 증명하려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구조 개혁부터 나서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핵심 과제는 ‘2030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입니다. 그러나 불공정한 전력시장 구조, 계통 연계 제약, 인허가 병목이 이러한 목표 달성을 가로막고 있습니다.한국이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AFF) 로드맵 의견서에서 강조한 전력망·전환금융·지역사회 이익공유 등의 의제가 국제 무대에서 설득력을 갖추려면, 재생에너지 병목부터 실질적으로 해소해나가야 합니다. 기후 리더십은 단순 의견서가 아닌, 실제 이행에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부록 -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AFF) 로드맵에 대한 한국 공식 의견서
【한국 의견서 요지】
(출처: 한국 정부 TAFF 로드맵 의견서 원문)
한국은 해당 로드맵을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거나 단일한 전환 경로를 제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환 과정의 장벽을 진단하고 이행 여건과 모범사례를 공유하는 ‘촉진적 도구(facilitative tool)’로 규정했다.
한국이 제시한 기본 원칙은 △탄소중립(넷제로) 장기목표 재확인 △‘획일적인 전환 경로는 없다’는 유연성 확보 △에너지 안보·경제성·신뢰성을 핵심 설계 요소로 반영 △정의로운 전환의 내재화 △신규 기구 설립보다 기존 제도 활용 등이다.
이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는 △거버넌스 및 법·제도 기반 강화(기후기본법 등 입법 기반을 통한 정책 예측 가능성 제고)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 활성화 및 민간자본 유입을 위한 리스크 완화·혼합금융 활용 △전력망 및 유연성을 ‘후회 없는(no-regrets)’ 인프라로 구축하고 효율 개선·전기화 확대 및 검증된 최적가용기술(BAT)의 신속한 보급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정책 패키지 설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 등 국제 협력 플랫폼 활용 등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은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직면한 국내적 어려움도 언급했다. 주요 과제로는 △장기적 정책 예측 가능성과 투자 신호 부족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망 취약성 △발전설비 입지 과정에서의 지역사회 수용성 확보 어려움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대응 방향으로는 ‘한국형 녹색전환(K-GX) 전략’, 글로벌 공급망 참여 확대, 지역사회 이익공유(benefit-sharing) 모델 등을 제안했다.
다만 한국은 구체적인 화석연료 감축·퇴출 시점이나 측정 가능한 감축 목표를 제시하기보다는, 국가별 상황에 따른 ‘국가결정형(nationally determined)’ 전환 경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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