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중동발 공급망 리스크 심화 속, 정부의 재생에너지 대전환 천명 환영
에너지안보·전력안정성·산업경쟁력 관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환경 정책 아닌 국가 전략
선언에 그치지 말고, 전력망·ESS·분산에너지 포함한 구조적 전환 빠르게 추진해야
정부가 전쟁과 중동발 공급망 리스크 심화 속에서 재생에너지 대전환을 천명한 것은 시의적절한 결정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이런 '대전환'이 듣기 좋은 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전력망·ESS·분산에너지까지 포함한 구조적 전환에 보다 빠르게 나서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지역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극한으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 차질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심각한 영향이 발생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전력 안정성·산업 경쟁력 관점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 이상 환경 정책이 아니라 국가 전략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4%에 달하며, 연간 에너지 수입 규모가 평균 200조 원 이상에 이른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원유 의존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1위를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중동 지역으로부터 수입하는 비중이 70%다. 에너지 가격 변동성은 기업과 가계를 동시에 압박하고, 산업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실제 한국전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화석연료 가격 상승으로 수십 조원의 적자와 73조원 사채의 늪에 빠진 상태이며, 이번 일로 가중할 부채 위기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에너지 안보 전략의 핵심 축으로 제시한 것은 방향성 면에서 옳다. 재생에너지는 연료 수입이 필요 없고, 지정학적 리스크에 덜 노출된 지산지소형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금융·산업 분석에서도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유가의 보조 변수로 해석되지 않는다. 에너지 자립, 전력 믹스 안정화, 공급망 리스크 헷지라는 관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 축소, 전력 생산원의 다변화로 안정성 제고, 글로벌 탄소 규제 환경 속 수출 산업 경쟁력 확보란 측면과 연계되어 있다. 이는 환경 정책이기 보다, 산업 정책이며 투자 전략이다.
이제 정부는 정교한 실행으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0% 안팎으로 OECD 평균 35%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한국의 낙후된 에너지 거버넌스 구조다. 전력망 병목과 계통 접속 지연, 입지 확보의 제약 및 인허가 절차의 비효율성 등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ESS 전략적 투자를 위한 경직적인 전력시장 제도 개선, 산업 탈탄소화와 연계한 전력 수요 구조 개편, 공적 금융의 화석연료 자산 축소 및 전환 금융 확대가 시급하다.
재생에너지는 단순히 발전 설비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전력 시스템 전체를 섬세하게 재설계하는 과제다. 그런데 정부 정책 가운데에는 여전히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 이번 발표 가운데도 2040년 이후에 노후 석탄발전 21기를 보존하면서 용량요금을 지원해주겠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시스템 전환 방향에 역행하며 수조 원의 전기요금이 잉여자원에 낭비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또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28기를 공급망 위기에 노출된 가스(LNG) 발전소로 전환하는 방안도 여전히 추진중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미 준공 지연을 겪으며 사업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데, 대전환 기조에 맞춰 LNG 의존에 대한 연장을 끊는 결단이 필요하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에너지 안보의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로벌 공급망은 재편되고 있으며, 각국은 에너지 자립과 산업 보호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는 이미 시행된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가 향후 반도체로 확대될 경우, 화석연료 기반 생산 구조를 유지하는 한국 기업들이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고객사의 RE100 공급망 요구를 충족하지 못해 수출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실제 국내 기업이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부터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여 부품을 생산하도록 요구받았으나 이를 충족하지 못하여 계약이 무산된 사례도 발생했다. 한국이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이지 못한다면,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무역 장벽, 글로벌 기업의 RE100 요구, 탈탄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철강, 석유화학과 같은 난감축 분야에 있어서도 공정과 연료 전환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이 나프타 분해 공정에서 발생하며, 이 공정은 현재 화석연료 기반 열원과 원료에 동시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전력 부문의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공정 자체를 전기 기반으로 전환하는 나프타 분해 공정 전기화와 같은 기술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원료 측면에서도 수입 원유에 기반한 나프타 의존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순환 원료로의 전환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철강 산업 역시 에너지 및 연·원료 수입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으로 고로 기반 생산 구조로 인해 석탄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다. 이에 에너지 가격 변동과 탄소 규제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 정부가 수소환원제철 실증 및 상용화 계획을 제시한 것은 구조 전환의 방향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전환이 실질적인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이 절실하다.
지금의 정책 선언은 출발점이다. 실행 속도와 정책 일관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기회는 다시 위기로 전환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나선 EU 등은 이번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압박에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고 있는 현실이 발빠른 전환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기후솔루션은 재생에너지·전력망·산업 탈탄소 전환이 한국 경제의 장기적 안정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정책 제안과 공론화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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