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산은·무보, ‘이동식 자산’ 핑계 환경영향평가 배제하며 LNG선 수십조 원 투자
이중연료 엔진 '메탄 슬립', 수중 소음, 외래종 유입… LNG선 기후·해양 생태계 파괴 심각
필리핀 '바다의 아마존', 멕시코 고래 서식지 등 쑥대밭... 선주민 인권 실사 철저히 방기
기후솔루션, 한국 NCP에 신규 금융 지원 중단 및 엄격한 환경사회 실사 체계 구축 등 조정 촉구
한국의 핵심 공적 금융기관들이 LNG 운반선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선박은 이동한다'는 이유로 환경·인권 파괴에 대한 책임과 실사 의무를 전면 회피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기후솔루션은 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국내연락사무소(NCP)가 있는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은과 한국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국내 선박 금융을 주도하는 3개 공적 금융기관을 상대로 OECD 다국적기업 기업경영책임 가이드라인 위반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기후솔루션은 이들 기관이 불투명한 금융 구조를 통해 LNG 운반선 확장을 부추기며 막대한 기후·생태적 피해와 재무적 리스크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LNG 운반선의 환경 및 사회적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LNG 운반선의 79%를 건조하는 한국의 주력 금융기관인 수은 등은 해당 사업이 ‘구체적인 프로젝트 위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필수적인 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배제해 왔다.
이는 국제 권고안을 좁게 해석한 결과다. 환경사회권고안은 실사 대상을 ‘자본재’와 ‘그것이 목적하는 장소’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LNG 운반선(자본재)이 운용되는 곳(운항 해역)을 포함해 사업 전반을 살피라는 취지로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수은은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특정 위치의 고정 시설’로 범위를 한정해 협소한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설령 환경사회권고안의 적용 대상이 모호해 심사 대상에서 빠지더라도, 이번 NCP 제소의 근거인 ‘OECD 다국적기업 기업경영책임 가이드라인’은 실사 범위를 특정 위치로 제한하지 않고, ‘가치사슬 전반의 환경·인권 실사를 평가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수은은 좁은 해석 뒤에 숨어 실사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수은을 비롯한 공적 금융기관들이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고 있는 대상 LNG 운반선 자체가 심각한 환경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박 건조 단계에서 철강 소비로 인한 막대한 탄소가 배출될 뿐만 아니라, 운항 중 이중연료 엔진에서 미연소 메탄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메탄 슬립' 현상이 발생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단기 온실효과가 최대 80배 강력해, 단 2~3%의 메탄 슬립만으로도 가스 전환의 탄소 절감 효과를 완전히 상쇄시킨다. 실제 2021년 기준 해운 부문 전체 메탄 배출량의 82%가 LNG 운반선에서 뿜어져 나왔다.
필리핀 '바다의 아마존'부터 멕시코 고래 서식지까지... 해양 생태계 및 인권 파괴
LNG 운반선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와 지역 사회는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이 같은 피해에서 한국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피해 지역을 운항하는 LNG 운반선의 상당수가 한국산이며, 건조 과정에 한국 공적금융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대형 LNG 운반선이 발생시키는 저주파 수중 소음은 고래 등 해양 포유류의 통신과 항법을 치명적으로 교란하며, 평형수 배출을 통한 외래 침입종 유입은 토착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있다. 실제 운항 중인 평형수 처리 장치의 최대 30%가 국제 기준(D-2)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런 선박들의 주요 항로는 세계적인 생물다양성 거점과 겹친다. 약 1736종의 해양 어류가 서식해 ‘바다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필리핀 베르데 섬 해협, 유네스코 지정 고래 서식지인 멕시코 캘리포니아만, 영세 어업권이 밀집한 모잠비크 세인트 라자로 뱅크 등이 무분별한 선박 운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항만 준설과 해상 통제 구역 설정으로 수산 자원이 고갈돼 현지 어민들은 조업권을 잃고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번 이의제기 과정에서 기후솔루션과 협업한 ‘더 나은 배유(Bayou 늪지대)를 위한 모임’의 제임스 하이엇 디렉터는 “루이지애나 남서부에서 LNG 선박이 만들어내는 항적파는 강둑을 갉아먹고, 소음은 해양 생물의 이동을 방해해 어획량이 계속 줄고 있다”며 “늪지대와 주민, 어촌 공동체가 겪는 비극을 묵인할 수 없어 이번 OECD NCP 이의제기를 지지한다”고 전했다.
건강 피해도 심각하다. 베르데 섬 해협 인근 필리핀 바탕가스 시에서는 지역 주민과 5세 이하 아동들에게서 호흡기 질환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공적 금융기관들은 선주민 및 지역 공동체의 자유사전동의(FPIC) 원칙을 철저히 무시한 채 인권 실사 의무를 방기했다.
협업 단체인 ‘브라조리아 카운티 기후 대화’의 설립자 그웬 존스는 “LNG 운반선은 미국 걸프만 남부 지역에 천식과 폐질환, 심혈관 질환과 암 발생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이 선박들에 대한 금융 지원 전에 제대로 된 실사가 생략되면서, 우리 공동체는 지역 생태계 파괴는 물론 지역 문화가 말살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출입은행 등 국내 공적 금융기관의 LNG 운반선 금융 지원은 여전히 확대 추세다. 기후솔루션이 국회 차규근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출입은행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LNG 운반선 분야에만 총 41.3조 원(대출 13조 원, 보증 28.3조 원)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를 포함한 5개 공적 금융기관의 전체 지원액은 총 58.8조 원에 달했다.
기후솔루션은 이번 이의신청을 통해 한국 NCP가 피신청인들에게 파리협정 1.5℃ 목표에 배치되는 신규 금융 지원을 즉각 중단하고, 국제 규범에 부합하는 엄격한 환경사회영향평가(ESIA) 및 실사 체계를 도입할 것을 권고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이의신청을 대리한 기후솔루션 하정민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수은 등 피신청인들은 위험 기반 환경 실사나 ESIA를 체계적으로 수행하지 않았고, 사업이 초래할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완화하기 위한 점검, 조건 설정, 구제 절차 마련 등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기후위기 대응, 생물다양성 보전, 인권 존중, 투명한 정보공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합의한 최소 기준으로, 피신청인들은 이 기준에 맞는 금융으로 전환하고, 한국 NCP 절차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 황다원 가스팀 연구원은 “공적 수출신용기관이 금융을 지원하는 LNG 운반선은 수중 소음 공해 및 선박평형수 배출 등을 통해 해양 생물다양성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며, 특히 가스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취약지역의 연안 공동체와 피해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위험을 야기한다”며 “수은과 산은, 무역보험공사는 포괄적인 환경 및 인권 실사 프레임워크가 마련될 때까지 LNG 운반선에 대한 새로운 공공 자금 조달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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