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솔루션, Earthjustice 등 세계 단체들, ‘기후변화 대응은 국가의 의무’라고 명시한 ICJ 권고에 부합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2035 감축목표를 한국 및 각 당사국에 요구
지난해 헌법재판소로부터 기후위기 대응의 미흡 판결을 받은 한국 정부의 2035 NDC 목표 설정에 세계적인 관심 쏠려
기후솔루션, 플랜1.5, PISFCC, WYCJ, Earthjustice, CIEL 등 33개 국내외 기후환경단체가 ‘기후변화 대응은 모든 국가의 의무’라고 명시한 국제사법재판소(ICJ) 권고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파리기후협약에 부합하는 최고 수준으로 잡아야 한다는 공개 서한을 25일 발표했다(전체 명단 별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5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60% 감축해야 한다고 과학적 분석에 기반해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서한에 참여한 이들은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국제 권고수준 이상의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시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세계 환경단체들은 서한을 통해 “야심 찬 (2035년) 목표 설정은 정치적 선택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법적 의무”임을 강조하고, 각 당사국이 이번 ICJ 권고적 의견을 2035년 NDC 수립에 충실히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또 “중요한 것은 제출 시점이 아니라 각국의 NDC가 담고 있는 목표의 수준과 실질적인 내용, 그리고 수립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협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유엔 최고 사법기관인 ICJ는 세계 각국이 기후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되어 책임을 물을 가능성을 여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번 권고적 의견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가 의무에 적용되는 법적 근거를 폭넓게 확인했다. 여기에는 기후변화협약, 국제관습법, 일반국제법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번 ICJ의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기후변화에 관해 국제적 사법기구가 사상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 법적 견해라는 점에서 국제법 논의의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를 대상으로 한 국내 소송부터 국가간 소송까지, 여러 차원에서 진행되는 전 세계 기후소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이번 ICJ의 의견이 나오기까지는 태평양 도서국과 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6년전 바누아투에 위치한 남태평양대학교에서 태평양 도서국 출신 학생들이 기후위기에 맞설 법적 전략을 모색하던 중 ICJ에 권고적 의견을 요청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바누아투 정부가 이에 호응해 앞장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초반 캠페인부터 유엔총회 결의안 채택, 이후 ICJ 절차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고적 의견의 내용 중 특히 NDC에 관한 부분은 2035년 목표 수립을 앞둔 현 시점에서 시의성이 크다. ICJ는 모든 국가가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highest possible ambition)의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 이하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는 파리협정의 1.5도 목표가 단순한 방향 제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행해야 할 기준임을 밝힌 것이다.
세계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안으로 제한하자는 파리기후협약에 가입한 한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협약에 따라 2035년 자국의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할 것인지 계획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2035년 NDC의 제출 기한은 당초 2월 10일이었으나 9월로 연장됐으며, 8월 4일 기준 27개국이 제출을 완료했다. 대부분 국가의 추가 제출은 올해 3분기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지난 18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정부는 9월 중 초안을 만들고 의견을 수렴해 10월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ICJ는 또한 NDC가 국가의 재량에만 맡겨진 사안이 아니며 국경을 넘어 끼치는 환경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엄격한 수준의 상당한 주의의무(due diligence,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결과가 타국의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필요할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 등 일정한 국제법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한 판례가 있는 우리나라에는 그만큼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1~2049년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장기적인 감축 계획을 세우는 후속조치에 착수해야 할 의무를 안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주문을 반영해야 할 2035년 NDC는 판결 이후 정부의 조치와 개선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기후솔루션 엄예은 외국 변호사(미국 뉴욕주)는 “우리나라는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으로서 권고적 의견이 강조한 1.5도 목표와 부합하는 최고 수준의 감축 목표를 2035년 NDC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인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 NDC 목표를 상향할 수 있는 핵심 경로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높은 석탄 발전 비중과 낮은 재생에너지 보급률은 OECD 평균과 큰 격차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한에 서명한 참여자들은 “파리협정 1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당사국은 협약 체결 당시 약속했던 1.5℃ 목표를 다시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와 현행 정책 및 이행 사이의 격차를 점검하고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한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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