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의 협상, 1년의 지연: 멈춰선 해운 넷제로의 미래
insights 2025-12-01

4일의 협상, 1년의 지연: 멈춰선 해운 넷제로의 미래

IMO 2050 Net Zero Framework: MEPC 중기조치는 왜 1년 연기되었나

현채영

해운 탈탄소라고 하면 우리 일상과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대부분이 바다를 건너온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산업이 넷제로를 향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가 결국 우리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각국은 2050년 넷제로를 향해 차곡차곡 준비해 왔다. 기술 기준을 만들고, 새로운 연료를 검토하고, 산업계도 조금씩 방향을 바꿔왔다. 그런데 2025년 국제해사기구(IMO) 협상장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해운 탈탄소화를 위한 퍼즐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 순간, 한 조각이 갑자기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협상이 ‘1년 지연’이라는 큰 변수를 맞이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협상이 멈춰 섰는지,

  • 어떤 외교적 힘겨루기가 있었는지,

  • 그리고 이 지연이 앞으로의 해운 탈탄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금 더 쉽게 풀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난관: 트럼프 2.0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은 기후 대응,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전환을 향해 쌓아 온 국제적 기반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미국은 다시 화석연료 산업에 동력을 실었고, 2023년까지 IMO의 넷제로 논의를 지지하던 태도에서 180도 선회했다.

협상을 두 달 앞둔 시점, 미국은 IMO의 ‘중기조치’에 반대하는 서한을 제출하며 이를 지지하는 국가들에 압박을 가하겠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달했다. 비자 제한, 관세까지 거론한 노골적인 압박은 협상장의 분위기를 단숨에 냉각시켰다.

트럼프 행정부의 IMO 중기조치에 대한 두 차례에 걸친 반대 공동성명서 (위: 8월 공동 성명서, 아래: 10월 공동 성명서)

미국은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내세우며 중기조치를 원치 않는 국가가 과반이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협상장 밖에서는 개별 국가를 상대로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일부 대표단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 측은 비자 문제까지 언급하며 중기조치 지지 표명을 자제하라는 압박도 불사했다고 한다.

중기조치, 그게 뭔데?

그렇다면, 중기조치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미국이 이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웠던 걸까?

2023년, 전 세계 무역량의 80–90%를 책임지며 우리 삶 속에 늘 존재하지만 쉽게 체감하기는 어려운 해운 분야에서 담대한 기후 목표가 선언되었다. 바로 2050년 국제해운 넷제로 달성이다.

그 결정을 이끈 곳이 바로 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다. IMO는 1980년대부터 선박의 기름·화학물질·폐수·쓰레기·대기오염물질을 규제해 왔다. 그러다 해양 산성화와 해수면 상승 등 기후위기가 바다에 직격탄을 날리자, IMO는 온실가스 감축을 핵심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고 2018년 선박 온실가스 배출 저감 전략을 세운 이후 ‘2050년 넷제로’라는 강력한 목표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IMO는 기존 규칙(MARPOL 협약 부속서 VI)을 개정하면서 국제해운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단기조치’와 ‘중기조치’를 준비해 왔다.

이중 중기조치는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에 따라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세’를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결국 저탄소/무탄소 연료로 전환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미국은 바로 이 지점을 경계했던 것이다.

전략의 고도화: 산유국 + 미국 연대

미국의 거센 반대가 이어지자, 지난 4월 회기에서 줄곧 중기조치에 반대해 온 사우디아라비아·UAE·러시아 등 산유국들 역시 더욱 고도화된 전략을 펼쳤다. 이들은 협상 내내 실질적 논의가 아닌 절차적 이견 제기에 집중하며 중기조치 채택을 지연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후 EU와 기후위기에 취약한 소도국들, 그리고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산유국들 간의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기술적 논의가 중심이었던 협상장은 어느새 국제정세가 축소 투영된 전장처럼 변해갔다.

중기조치를 지지하던 일부 국가들도 하나둘 외교적 압박에 밀려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는 정책적 판단이 아닌 외교 압력에 따른 변화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여러 국가 정상이 방한하는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는 해양 탈탄소 정책을 논의하고 있음에도 협상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기 어려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었다.

협상과 UN 기구의 위상 사이

IMO 사무국에게 이번 중기조치 논의는 단순한 정책 조율이 아니었다.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협상 구조가 한 국가의 영향력으로 무너질 경우, UN 전문기구로서의 위상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정치적 이유로 수년간 쌓아온 협상 자체가 부결되는 것보다 지연이 차라리 낫다는 현실적 판단 속에서, 사무국·사무총장·위원회 의장은 유럽연합과 산유국+미국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최소한의 합의점을 모색해야 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유럽연합 국가들의 의장과 사무총장석에 가서 대립에 대한 논의와 항변을 하는 모습

협상 마지막 날,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기조치 자체를 지연시키자는 새 제안을 냈다. 좌장이 “지연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묻자, 그들은 고조된 목소리로 “1년”을 제시했다.

결국 4일간의 긴장 속에서 MEPC는 중기조치를 채택할지 여부가 아니라, 1년 지연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135개 투표권 국가 중 지연 찬성은 57개국, 지연 반대는 49개국이었고, 한국을 포함한 일본·군소도국은 외교적 압박 속에 기권표를 던졌다. 지연 찬성에 과반이 넘어, 결국 중기조치 협의안의 대한 논의는 1년 지연으로 합의되었다.

협상장 마지막날,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IMO 사무총장의 절망적인 표정

지연의 의미: 단순한 ‘절차 보류’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의 미국 외교는, 국제 협상장에서 한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크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UN 기구 협상의 본질은 상호 동등한 국가 간 조율과 합의다. 이번 IMO 협상의 지연은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 대응 자체의 지연을 상징한다.

해운은 세계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를 실어 나르는 핵심 운송 수단이다. 따라서 선박 배출 감축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중요한 열쇠다. 그간 각국 전문가들이 축적해 온 논의와 기술적 준비는 이번 정치적 변수로 인해 단 며칠 만에 1년 뒤로 밀려났다.

앞으로의 과제

국제협상은 조용한 전쟁에 가깝다.

수년간 쌓인 해운 탈탄소 로드맵의 시계는 잠시 멈췄지만, 각국은 어지러운 정세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다시 걸어가야 한다.
2026년 10월 MEPC 회기에서는,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각국의 비전과 기후 책임에 기반한 합의를 통해 중기조치 도입이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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