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기후주간의 기록: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insights 2025-10-14

뉴욕 기후주간의 기록: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기후주간에서 배운 기후 커뮤니케이션, 선언이 아닌 행동, 정책이 아닌 연대

박준희 디지털 콘텐츠 마케터

뉴욕 기후주간, 그 유리의 집 속에서

Glasshouse.

올해 뉴욕 기후주간의 공식 행사장이자, 주최 단체인 클라이밋 그룹(Climate Group)이 이틀간 수십 개의 세션과 토론, 네트워킹을 진행한 공간이었다. 뉴욕 기후주간(Climate Week NYC)은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그룹(Climate Group)이 주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후행동 주간이다.

뉴욕 기후주간은 9월 21일부터 28일까지 열렸다. 도시 전역에서 1000개 이상의 행사가 진행되었고, 정부 수반과 장관들, 다수의 기업 CEO들이 참여했다. 올해 주제는 ‘Power On’이었다. 기후 행동을 다시 켜자는 의미였다. 행사의 흐름은 선언보다 실행에 가까웠다. 에너지 전환, 산업 탈탄소화, 인공지능 기반 감축 기술 등 ‘왜’나 ‘무엇을’보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Glasshouse’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자연스레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이 떠올랐다. <종이의 집>에는 도시의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뉴욕 기후주간 ‘유리의 집’에도 뉴욕, 서울, 파리, 런던, 타이페이, 뉴델리, 방콕, 도쿄 등에서 온 등장인물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단어 ‘기후’를 말하고 있었다.

규모는 컸지만, 공기는 생각보다 인간적이었다. 세션이 끝난 뒤 복도를 오가며 인사와 네트워킹을 나누는 사람들, 다음 세션을 준비하며 커피잔을 쥔 손의 떨림, 서로 다른 배지를 단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언어로 기후를 이야기하던 순간들이 오래 남았다. 무언가를 주장하기보다 듣고자 하는 분위기, 그리고 작은 변화라도 만들려는 긴장감이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그 열기와 분위기 사이에서,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현실의 질감으로 다가왔다.

ReWear the Revolution Street Event

9월 24일, 뉴욕 공공도서관 앞 거리에서 한 행사가 열렸다. 모델이 입은 드레스에 참가자들이 폐페트병 조각을 바늘과 실로 꿰매어 붙였다. 행사는 패스트패션이 만든 기후와 환경 파괴의 속도를 늦추고, 버려진 것을 다시 짜는 순환의 의미를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패션의 속도를 늦추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패스트패션이 남긴 기후와 환경의 흔적을 드러내고, 버려진 재료를 함께 꿰매는 행위를 통해 순환과 재생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취지였다. ReWear라는 이름대로, 다시 입고, 다시 짜고, 그리고 다시 관계 맺자는 제안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손으로 작은 파편들을 이어 붙이며 패션 산업이 남긴 흔적을 되돌려놓으려 했다. 거리에서 벌어진 그 협업을 통해, 거대한 회의장의 담론이 거리의 손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편영화 <Last Gasp>과 보이지 않는 것

며칠 뒤 The Auditorium(566 7th Avenue, New York)에서는 단편영화 <Last Gasp>의 상영회가 열렸다. 영화는 BBC 다큐멘터리 <Under Poisoned Skies>에서 영감을 받은 17분짜리 드라마 형식으로, 이라크 루마일라 지역의 교사 라드 카림(Raad Karim)이 메탄 플레어링(석유나 가스 채굴 과정에서 남는 가스를 불태워 없애는 행위)으로 오염된 공기 속에서 딸의 병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그는 화석연료 기업의 주주 로버트 하퍼와 그의 딸 줄리아나를 찾아가 기업이 불필요하게 태우는 불을 멈춰달라고 요구한다.

영화는 처음엔 납치극처럼 보이지만, 곧 폭력의 방향이 바뀐다. 무기를 든 이는 가해자가 아니라, 숨 쉴 권리를 되찾으려는 아버지였다. 라드는 협박이 아니라 호소를 한다.

“당신 회의실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는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영화는 불타는 유정과 차가운 회의실을 번갈아 보여주며 ‘누가 숨을 쉬고, 누가 질식하는가’를 묻는다. 영화가 다루는 고통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에너지의 이면이었다. 보이지 않는 오염과 들리지 않는 고통이 스크린을 넘어 현실의 공기로 번졌다. 상영 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 한 참여자가 말했다.

“메탄은 가장 빠르고, 가장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입니다.”

투명한 벽은 깨끗함의 상징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외면해 온 것들을 비추는 표면에 가까웠다.

그 거리의 손끝과 영화의 스크린은 전혀 다른 장면이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메시지는 같았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일.’

유리의 집을 나서며

모래는 유리가 될 때까지 1500도의 열을 견딘다. 이후 천천히 식어 결국 단단함을 갖춘다.

우리의 기후위기는 아직 식지 않은 유리처럼 형태를 바꾸어가며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의 힘은 이 유리를 식히고 이내 단단하게 굳혀 기후위기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돌아와서 쓰는 문장

기후주간은 “이건 당장 해야 하는 일”이라는 공감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기후 이야기가 여전히 제도와 정책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그곳에서는 ‘행동’과 ‘연대’의 언어가 중심에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된 경험이다. 공식 행사의 세션들과 <Last Gasp>, 거리의 이벤트까지 과학과 예술, 행동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나 ‘Invisible → Visible’의 전환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아닐까. 메시지와 숫자, 데이터 속에 묻힌 현실을 ‘보이게’ 하고, 사람들이 느끼고 움직이게 만드는 일. ‘누가 기후위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전문가 중심의 시야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주체의 이야기를 담는 콘텐츠의 필요가 남았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넷제로, 청정에너지, 기후금융 같은 담론이 쏟아졌지만, 한국의 현실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복잡하다. 뉴욕에서의 말과 한국에서의 행동 사이의 간극, 그 사이를 메우는 다리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후주간은 축제이자, 동시에 전환의 무대였다. 그곳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기후 행동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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