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도씨레터는 기후 뉴스를 전하는 기후솔루션의 뉴스레터입니다. 이번 포스트는 8월 포도씨레터에 실린 부경대학교 환경대기과학과 김백민 교수님 인터뷰입니다.
8월 23일은 절기 '처서'입니다. ‘처서매직’이라는 말처럼 이날이 오면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하곤 하지만, 요즘은 9월까지 무더위가 이어지곤 합니다. 절기라는 자연의 시계가 흐트러진 지금, 기후 과학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그리고 연속된 폭염으로 이미 다가온 것 같은 기후 재난 속에 우리는 왜 여전히 희망을 말해야 할까요? 기후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부경대학교 김백민 교수님을 모시고 변화된 날씨의 양상과 그 원인, 해결 방안과 시민의 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포도씨: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포도씨레터 구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백민 교수님: 안녕하세요. 부경대학교 환경대기과학과에서 남북극 기후변화, 중위도 이상기후 등을 연구하고 있는 김백민입니다. 기후위기 문제를 깊이 연구해 왔고, 다양한 시민사회·언론·정책 영역과 협력하며 기후위기의 본질을 알리고 이를 해결할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도출해 내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사라진 절기, 그리고 ‘한국형 극한 호우’의 비밀
포도씨: 최근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계절과 날씨가 예전 같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실제로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현상이 데이터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나요?
김백민 교수님: 네.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현상은 데이터상으로 확실히 확인되고 있어요. 봄, 가을은 조금씩 짧아지고 여름이 늘어나는 시그널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여름이 앞뒤로 늘어나면서 봄은 뒤를, 가을은 앞을 조금씩 갉아먹는 형국입니다. 겨울은 확실히 짧아지고 있고요. 다만, 봄과 가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뚜렷하게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포도씨: 우리에게 날씨의 변화가 크게 다가오지만, 실제로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는군요!
김백민 교수님: 맞아요. 원래 기후변화에 속하는 시그널들은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속된 말로 ‘미쳐가지고’ (웃음) 사람들이 ‘기후가 이렇게 빨리 변해도 되나?’라는 착각을 하게끔 날씨 변동이 너무 심하잖아요. 이게 기후인지 날씨인지 도저히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럽죠. 이 모든 현상의 핵심은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날씨의 변동성이 너무 커져서 기후와 날씨가 뒤섞여 보이고, 사람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급격한 변화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포도씨: 특히 올해 여름은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날씨가 극단적이라고 느끼고, 날씨 변동성도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김백민 교수님: 맞습니다. 폭우 아니면 폭염, 이런 식으로, 양극단으로 날씨가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이제 사람들이 이게 봄인지 여름인지, 절기 개념이 헷갈리는 거예요.
사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평균적인 특징으로 보면 아직은 뚜렷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돌발적인 날씨 이벤트'들로 인해 날씨 변동성이 너무나 심하다 보니 절기가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이죠. 사람들이 계절의 경계가 없어진 것처럼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착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변화가 사람들에게 ‘이러다 동남아 날씨처럼 되는 것 아니냐?’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일부 지역은 아열대 기후의 정의에 맞는 조건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긴 합니다. 겨울에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 등 변화가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은 온대 기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물론 아열대 기후의 특징이 점차 북상하긴 하겠지만, 완전히 변화하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겁니다.
포도씨: 완전히 변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날씨 변동성 때문에 기후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데이터적으로도 확인이 되는 것이군요.
김백민 교수님: 네, 확실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또 아열대라고 부르기에는 힘든 고유한 기후적 특징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최근 자주 발생하는 '극한 호우' 같은 경우죠.
포도씨: 어, 그런가요? 보통 극한 호우는 적도나 아열대 지역에서 더 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김백민 교수님: 그렇습니다. 적도나 아열대 지역의 비는 보통 '스콜'이라고 부르는데, 스콜은 햇빛이 너무 강해서 낮 동안 땅이 가열되면 오후에 축적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극한 호우는 스콜과는 메커니즘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따뜻한 공기와 찬 공기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고, 이 무더운 공기덩어리가 힘이 떨어질 때쯤 북쪽에서 찬 공기가 치고 내려오는 거죠. 과거에는 약하게 부딪혔다면, 이제는 강하게 부딪히는 겁니다.
그렇게 세게 충돌하면서 싸움의 영역이 한반도 전역이 아닌 아주 좁은 지역에 국한됩니다. 찬 공기는 아래로 파고들고, 많은 양의 수증기를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밀려 올라가면서 엄청난 폭우를 만드는 구름으로 바뀌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시간당 100mm가 넘는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이런 현상은 스콜과도 다르고 장마와도 다릅니다. 우리가 당장 탄소중립을 달성한다고 해도 이런 현상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에 ‘한국형 극한 호우 시대’가 열렸다고도 볼 수 있어요.
포도씨: 그렇다면 이런 날씨 변화는 다시 이전으로 회귀할 수 없는 흐름일까요?
김백민 교수님: 네, 앞으로 20~30년은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당장 내일부터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굉장히 오랫동안 머무르거든요. 그래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고 해도, 20~30년 동안은 이 정도의 날씨는 각오하고 살아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감축과 함께 적응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후위기의 또 다른 원인: 깨끗한 공기가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든다?
포도씨: 결국 '삼한사온', '처서매직' 같은 말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된 이유가 기후위기 때문이겠군요?
김백민 교수님: 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10초라면 '기후위기'라고 짧게 이야기하겠지만 (웃음), 좀 더 긴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요. 먼저 질문 하나 드릴게요. 산업혁명 이후에 지구 온도가 몇 도나 상승했을까요?
포도씨: 앗,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1.5도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김백민 교수님: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과학자들조차 헷갈리는 부분이거든요. 누군가는 이미 1.5도를 넘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아직 넘지 않았다고 주장하죠. 그 비밀은 바로 ‘평균 기간’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4년에 1.52도를 넘긴 건 사실이지만, 엘니뇨나 태양 활동처럼 인간과 무관한 자연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자연의 변덕스러운 변동성을 제거하고 인간 활동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10년 평균 온도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일종의 '정수기 필터'처럼 자연의 노이즈를 없애고 인간 활동에 의한 온도 변화만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아직 1.5도는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는 1.3도에 육박하는 정도죠. 그래서 아직 1.5도 목표를 위해 노력할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포도씨: 그렇다면 지금까지 상승한 1.3도 중 대부분이 인간 활동 때문이라는 말씀이군요.
김백민 교수님: 네. 80~90% 이상이 인간 활동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나머지에 해당하는 0.2~0.3도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바로 최근 우리가 겪는 극한 호우의 원인이거든요. 사실 저는 올해 우리가 겪고 있는 날씨는 '어느 정도 미래에서 당겨온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025년의 여름은 사실 2030년대 중반에 일어나는 일상적인 날씨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과학자들이 의아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에 인간 활동 요인을 아무리 넣어도 이렇게 급격한 날씨 변화는 나타나지 않거든요. 뭔가 숨겨진 원인이 있다는 거죠. 그 '뭔가'가 최근 들어서 조금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포도씨: 그 숨겨진 원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김백민 교수님: 또 다른 인간 활동이 그동안 지구를 냉각시키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구를 위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온도를 상승시켰고요. 힌트를 드릴까요? 베이징 올림픽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포도씨: 나무 심기 같은 건가요? 너무 어려워요.
김백민 교수님: 그럴 수 있어요. 정답은 바로 '대기오염'입니다. 최근 10년 사이,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세먼지가 많이 줄었어요. 사람들이 깨끗한 공기에 대한 열망이 커졌기 때문이죠. 햇빛을 반사하던 먼지가 사라지면 지표면이 햇빛을 많이 흡수하면서 더 뜨거워집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2020년부터 시행된 '선박 규제'입니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선박이 배출하는 황(SO2)을 규제하기 시작했거든요. 황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햇빛을 많이 반사하는 물질입니다. 금성이 샛별처럼 반짝이는 것도 표면을 덮고 있는 황 성분이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IMO 규제로 인해 황 배출량이 80% 이상 급감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맑아진 하늘로 인해 더 많은 햇빛이 바다에 도달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숨겨진 0.2~0.3도의 비밀입니다. 환경을 더 좋게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이 오히려 지구 온도를 더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시점입니다.
포도씨: 정말 복합적인 원인이 얽혀있네요. 기후위기 문제는 정말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김백민 교수님: 맞습니다. 기후위기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무조건 '감축'하고 '적응'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우리는 자원도 부족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죠. 그래서 저는 이제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우리가 합리적인 의사결정, 그리고 진짜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게 무엇인지 철저하게 따져볼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만의 ‘기후테크’를 찾아야 하는 이유
포도씨: 기후변화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복합적인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김백민 교수님: 제가 최근 드는 생각이 뭐냐면, 요즘 인공지능(AI) 주권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AI만 주권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모든 과학 영역에서 우리가 우리 것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죠. 왜 기후위기 대응을 IPCC 보고서만 활용해야 할까요? 사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감축’은 글로벌 이슈, ‘적응’은 로컬 이슈라고 보거든요. 감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에 중요해요. 따라서 전 세계적 기준에 맞춰 감축을 해나가는 게 필요하죠. 반면에 적응에 있어서는 나라마다 기후가 다르고, 나타나는 재난의 종류가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로컬 이슈로 봐야 해요.
IPCC의 탄소 인벤토리에 사실 중국의 최근 배출량 변화 같은 것들은 반영되어 있지 않아요. 유럽이나 미국의 과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보고서를 만들다 보니, 아무래도 자기 나라와 주변 데이터에 친숙할 수밖에 없죠. 대서양과 다르게 우리나라 서해 밑에는 찬물이 있는데, 이걸 누가 알겠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기후학자인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 우리의 과학자들이 우리의 시선에서 쓴 과학 논문이 많이 인용되어야 하고, 그런 연구를 중심으로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맞는 기준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도씨: 아까 말씀 주신 스콜과 우리나라 극한 호우의 차이점도 그렇고, 정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현상이 다를 텐데, 동일한 기준을 갖고 본다는 게 어딘지 맞지 않는 이야기 같아요.
김백민 교수님: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적응은 엔지니어링 측면이 상당히 강조되어야 합니다.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기술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죠. 더 나아가, ‘기후테크’라고 부르는 여러 적응 솔루션들을 비즈니스 영역으로 만들어 적응 기술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찾아나가야 할 때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날씨 변화가 드라마틱한 나라는 거의 없어요. 대륙의 동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기후적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죠. 유럽처럼 날씨가 온화한 대륙의 서쪽과는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극단적인 날씨에 국민들이 익숙해져 있다고 봐야 해요. 정말 ‘다이내믹 코리아’, 날씨도 다이내믹합니다. 이런 다이내믹한 날씨를 잘 활용해서 기후변화 적응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세계에 수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상을 바꾸는 힘, ‘긍정적 피드백’
포도씨: 말씀 주신 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인 감축에 힘쓰고, 또 잘 적응함으로써 적절한 솔루션을 마련하는 것 같아요. 감축을 통한 솔루션은 저의 일터, 기후솔루션의 활동으로 구독자분들이 익숙하실 것 같아, 오늘은 적응에 대해 들어보고 싶은데요. 적응에 있어서는 어떤 부분을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까요?
김백민 교수님: 적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힘든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불평등에 관한 이슈입니다. 기후위기는 무조건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예산이 많이 들더라도 기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식량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로 인해 더 이상 고등어를 잡기 힘들어진다면 “고등어 먹기 힘들어졌다”라고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럼 다른 거 먹자”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등 빨리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국가와 과학자가 함께 연구하고 농민들과 협력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기술을 활용한 적응입니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과 같은 기술들은 기후변화 적응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염에 노출된 고온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죠. 이러한 적응 기술을 '기후테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섹터로 만들어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수출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과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섹터로 만들어서 기회를 잡을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감축을 토대로 적응이 효과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한국에 맞는 모델을 찾아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포도씨: 교수님, 그렇다면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정부, 기업, 개인이 각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꼽아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백민 교수님: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하지만 각 주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먼저 정부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디테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거든요.
정책이 단순히 구호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세상을 바꾸려면, 현장에 어떻게 스며들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재명 정부의 정책들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구체적인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 함께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디테일을 통해 정책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에는 ESG 경영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그만이던 시대였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이 달라졌어요. 소비자들은 지구에 이로운 방식으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선택하기 시작했거든요.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치를 진심으로 추구하고 행동할 때 소비자들이 이를 알아주고, 이것이 결국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물건 하나를 만들 때도, 지구라는 '새로운 고객'이 생겼다는 마인드로 자원을 함부로 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포도씨: 기업과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그럼, 우리 개인과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김백민 교수님: 저는 자연이든 인간 사회든 세상이 작동되는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피드백(feedback)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강력한 자연의 피드백이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먼저 인간이 내뿜은 온실기체로 인해 지구가 조금 더워지면 얼음이 녹고, 녹은 얼음 때문에 햇빛 반사율이 줄어 바닷물이 더 뜨거워지고 다시 얼음이 더 빨리 녹아 지구를 더 덥힙니다. 이와 같은 양의 피드백에 대한 이해 없이는 기후변화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피드백 원리는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기후위기에 맞서려면 우리는 '사회적 피드백'을 만들어내야 해요. 기업이 지구에 도움 되는 물건을 만들면, 소비자들이 그 기업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기꺼이 돈을 쓰면 지구에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기업이 더 흥하는 식의 선순환 말입니다. 이런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세상에 넘쳐나야만 기후위기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비관론을 넘어 희망을 말하는 이유
포도씨: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거대한 위기 앞에서 한 명의 개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해결책이 없다는 비관적인 시각은 오히려 희망을 잃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백민 교수님: 맞아요. 저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아요. 물론 2030년대 중반까지는 지금과 같은 날씨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희망적인 신호가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이전에 화석연료 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하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이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탄소중립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여전히 지구 온도가 6도 오를 것이라는 극단적인 멸망 시나리오를 얘기합니다. 그런 시나리오들은 현실성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확률보다 낮다고 생각합니다.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였겠지만, 너무 과장돼서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포도씨: 교수님 말씀처럼,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김백민 교수님: 그렇습니다. 아무도 10년 전에는 태양광 발전 단가가 화석연료보다 이렇게까지 저렴해질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변화도 일종의 긍정적 피드백이 작동한 결과예요. 우리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회적 피드백을 만들어낸다면, 생각보다 빨리 기후위기가 해결될 수도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미래는 결코 확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 내일을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포도씨: 기후 과학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셨던 순간이 있으시다면 언제인가요?
김백민 교수님: 솔직히 저는 찐 과학자입니다. 논문을 100편 이상 썼고, 제 논문이 인용되거나 제 학생들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많은 분들의 생각을 조금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때 굉장히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얼마 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제 강연을 듣고 암울한 기후위기 현실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정말 찡했습니다. 그럴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포도씨: 저도 이 짧은 시간 동안 교수님과 대화하면서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그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교수님, 마무리하기 전에 질문 하나를 더 드리고 싶은데요. 작년 연말 저희 기후솔루션에 후원 참여를 해주셨어요. 저희 기후솔루션을 후원하게 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김백민 교수님: '기후솔루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을 하는 단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후위기는 때때로 너무나 거대한 담론이 되어 솔루션을 찾는 데 방해가 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기후솔루션은 거대 담론에 갇히지 않고, 문제의 핵심과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어서 예전부터 후원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되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저 같은 시민들이 '긍정적 피드백'을 만들 때 기후위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고, 제가 기후솔루션에 후원한 것이 바로 그 작은 실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포도씨: 정말 감사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요. 마지막으로 '처서 매직은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며 우려와 걱정을 하고 있을 저희 포도씨레터 구독자분들께 희망과 격려의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백민 교수님:미래를 결정하는 건 바로 지금 나의 행동입니다. 저는 자연과학자라서 늘 사람을 빼고 미래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기후위기 문제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인간의 행동은 정말 예측할 수 없고,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세상이 빠르게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수록, 세상은 정말로 빨리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우리 구독자분들과 꼭 공유하고 싶습니다.
포도씨: 교수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셔서 저희 포도씨레터 구독자뿐 아니라 저 포도씨에게도 큰 힘이 되었어요. 교수님 말씀처럼, 포기하지 않고 행동하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김백민 교수님과의 인터뷰, 어떻게 보셨나요? ✨
'처서매직'이 사라진 이유를 넘어, 기후위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사회적 피드백'에 대한 교수님의 통찰은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줍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긍정적인 믿음을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