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의 레이어41은 철강 공장을 개조한 스튜디오로 보통 유명 브랜드나 가수 등의 홍보 행사가 열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이곳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토크 페스티벌, ‘선 넘는 기후’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선 넘는 기후는 기후솔루션이 처음 시도한 대중 강연 행사이기도 합니다. 이미 닥쳐온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국가간 경계, 영역간 구분이라는 낡은 선을 넘어 함께 대응에 동참하자는 취지를 제목에 담고 있습니다.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에는 200명 가까운 관객이 몰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키노트: 윤순진 X 한제아
이날 페스티벌은 윤순진 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과 한제아 어린이의 대화로 그 문을 열었습니다. 제아는 지난 8월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기후헌법소원’ 결정을 받아낸 어린이 원고 가운데 한 명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감축계획의 부실함을 제기한 이 헌법소원에서 헌재는 그 취지를 받아들여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탄소중립 계획을 보다 면밀하게 수립해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받아낸 원고 중의 한 명 답게 제아는 날카로운 질문과 똑부러진 답을 내놓았습니다. 또 기후위기 문제를 일찍이 경고해 온 대표 학자답게 윤순진 교수는 어려운 질문을 쉽게 풀어서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윤순진: 제아가 대통령이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 같아요?
한제아: 먼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월급을 깎아서 기후 대응에 쓸 것 같아요. …내가 먼저 무릎을 꿇어야 다른 사람도 꿇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먼저 모범을 보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활동하셨을 때 어떤 게 가장 힘들고 어려우셨나요?
윤순진: 제 인생을 걸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때라고 생각해요. …이 자리는 어떻게 하더라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똑같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저하다가 용기를 냈습니다. 그렇게 논문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하자고 했는데, 욕을 먹는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후에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제일 어려웠던 것은 결국 조율하는 것이었어요. 위원회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거버넌스 기구였거든요. …(제가 도출한 목표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종교계 NGO(비정부기구)에서 위원회를 탈퇴하셨거든요. 그때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산업계의 (완화) 요구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그 분들이 계셔서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당시의 목표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기후 X 머니: 기후가 곧 경제다
기후위기 전반을 톺아볼 수 있었던 두 사람의 대화에 이어지는 세션은 ‘기후X머니(돈)’ 세션이었습니다. 이 세션은 기후는 뭔가 숭고한 것, 돈과 이윤 추구는 세속적인 것이라는 구분을 지우고, 경제와 기후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취지의 세션이었습니다. 이 세션은 기후와 경제의 상관 관계를 논해온 국내 대표 경제학자인 홍종호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를 시작으로, 기후테크(기후위기 완화 기술) 스타트업 투자를 관장해 온 소풍벤처스의 조윤민 파트너, 삼프로 언더스탠딩의 국내외 산업 취재를 맡아 온 김상훈 기자가 기후와 경제 사이 관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홍종호: 기후는 곧 돈이고 경제라는 개념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세계 무역질서가 재편되고 있거든요. 이 뉴 노멀(new normal) 상황에선 곧 탄소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이 됩니다.
조윤민: 넷제로를 위한 글로벌 규제와 정책들이 속속 나오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는 글로벌 자본의 집중으로 지금은 기후 투자의 최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 경기 침체로 기후 투자도 영향을 받고 있지만 초기 단계 투자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김상훈: 기후 대응을 두고 세계가 “(이대로가면) 곧 죽는다”(선진국) 대 “사다리 걷어차기다”(개발도상국)로 대립해 교착된 상태입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기후대응이 곧 돈이 된다는 ‘돈의 논리’가 필요합니다. 특히 태양광 부품부터 ESS(에너지저장장치) 기술까지 집중 투자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 X 세계: 영국, 인도, 한국의 공동 과제
기후 대응은 국경을 넘은 세계 공통의 ‘조별 과제’이기도 합니다. 성공적인 조별 과제를 위해서 어떤 생각과 준비가 필요한지 영국, 인도, 한국의 세 사람이 마주 앉았습니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영국 출신 탐험가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제임스 후퍼(James Hooper), 인도에서 태어나 지금 한국의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에서 일하고 있는 우드깃 사츠데이브(Udgeet Sachdev), 기후전문기자로 세계 동향에도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준 박상욱 JTBC 기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번 세션은 기후솔루션의 이우영 활동가가 질문을 던지고 이끌면서 세 사람이 함께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탄소 감축 컨설팅사에서 일하고 있기도 한 탐험가 후퍼는 과거 북극 탐험 중에 ‘평소 같으면 녹을 리가 없는’ 빙판이 녹는 바람에 동료 탐험가가 극한의 북극 바다에 빠지고 그를 살리기 위해 고생했던 경험으로 기후변화가 지구에 어떤 변화를 가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달하였습니다.
이어 박 기자는 이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세계 공동 대응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트럼프 2기’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즉 트럼프 1기를 보면, 그가 입으로 화석연료를 내세운 것과 달리, 실제 미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민주당 정부 시기 보다 더욱 확장했다는 것입니다. 실리 추구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국정 운영 방식이 지금의 기후대응 기조에서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살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사츠데이브는 ‘기후’를 주제로 한 자신의 여정이 어떻게 인도에서 한국에 오기까지 삶을 이끌었는지 풀어 놓으면서 부상하는 신흥 대국인 인도가 수많은 인구의 복리를 증진하면서도 기후 대응에 동참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등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제시하였습니다.
기후 X 문화: 감동의 마무리
선 넘는 기후 대미의 마무리는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기후’를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는 3명의 문화예능인이 장식하였습니다. KBS 환경 다큐멘터리 ‘붉은지구’를 연출한 구상모 피디, 웹툰 ‘기후위기인간’의 구희 작가,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예능, ‘산으로 간 조별과제’에 출연한 유튜버 이승국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승국 유튜버의 재치 있고 발랄한 사회로 진행한 마지막 세션에서 세 사람은 ‘기후변화’라는 어려운 주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이야기하고 널리 전파하기 위해 부닥치는 어려움과 고민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앞에서 경제와 정치라는 다소 어려운 이야기에 정신을 집중해 들었던 청중들은 세 사람의 재담에 웃음을 터트리며 함께 어우러져 갔습니다.
문화 세션 중에는 생각지 못한 감동의 순간까지 찾아왔습니다. 구 피디가 붉은지구와 같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지만 주변의 변화가 더딘 점에 대한 ‘현타’를 이야기한 직후에 한 참가자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붉은지구의 (유튜브 영상) 댓글 단 사람 중에 20명(의 원인이 되었다)”고 운을 뗀 그는, “저는 교사인데요. 붉은지구를 통해 생태수업을 했던 사람으로서 피디님과 여기 계신 세 분에게 (지금 하시는) 그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5학년 아이들과 붉은지구를 본 것이 원동력이 되어 1년 동안 생태수업을 할 수 있었고, 아이들과 고마운 제작진에게 무엇을 할까 하다가 댓글부터 달자고 하여 단체로 댓글을 달아 KBS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6학년에도 계속 생태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마운 다큐를 계속 제작해 주셨으면 해서 마이크를 잡게 되었습니다.” 청중에서 나온 뜻밖의 감사 인사에 구 피디는 “너무 감사하다”며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선 넘는 기후에는 이렇듯 멋진 강연뿐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에 일조할 수 있는 가정에서 쓰는 전기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운동을 하는 소비자기후행동의 안내 부스, 지구 인형을 안고 기념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부스 등 부대 공간도 마련되어 다채로움을 더했습니다.
지식과 감동이 어우러진 이날 실제 강연 내용은 곧 기후솔루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