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한낮 브루클린 대교 위를 청년 수백 명이 여러 피켓, 깃발,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요?
미국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에콰도르, 대만, 우간다, 멕시코, 대만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온 10대 청소년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진 거리 행진이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뉴욕기후주간(New York Climate Week) 개막을 이틀 앞두고 기후위기 대응의 목소리를 높이려고 나왔습니다. 이날 9월이 끝나가던 맨해튼도 평년보다 섭씨 4도 이상 높았던 날로, 추석까지 폭염경보가 났던 한국에서처럼 이상한 기후가 물씬 느껴지는 가을이었습니다.
뉴욕기후주간이 무엇일까요? 뉴욕기후주간은 매년 9월 뉴욕에서 개최되는 국제적인 행사로, 정부, 기업, 시민사회 리더들이 모여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과 행동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기후 변화에 대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이해관계자가 모여 네트워킹과 논의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과 정책이 도출되는 교두보로 이어지곤 합니다. 기후주간은 유엔 총회와 맞물려 진행되며, 전 세계의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중요한 자리기도 합니다. 그런 기회를 살려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청년들이 모인 것이죠.
기후솔루션도 그 중요한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해 기후운동을 태동시킨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 FFF)’의 일환으로도 열린 이번 행진에서 청년들은 기후위기와 맞서기 위해서 화석연료 생산 중단을 촉구해야 한다는 요구를 정부와 산업계에 전했습니다. 과학이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석유와 가스 같은 화석연료 사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기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툰베리가 ‘미래를 위한 금요일’을 설립한 지 6년이 지났고 주요 국가와 기업이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2.15% 증가했다는 게 그 방증이 되겠죠.
청년 기후 행진의 메시지는 3가지로 요약됩니다. 화석 연료 산업을 지탱하는 세 가지 주요 기둥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화석연료 생산에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부문, 오염을 유발하는 기업, 화석연료 정책과 규제 권한을 가진 정책결정자가 그 대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주요 화석연료 사업에 금융지원을 하는 씨티은행은 청년들의 구호 속에서 주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책과 관련해서는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를 향한 목소리가 컸습니다. 주지사에게 ‘기후변화 슈퍼펀드 법안’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 것인데요, 이 법안은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업이 기후적응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 비용을 부담하는 내용을 담은 ‘결자해지’ 법안입니다.
행진은 맨해튼 남쪽 끄트머리 다운타운에 있는 폴리 광장에서 시작해 브루클린 대교를 건너 브루클린 지역의 보로홀까지 이어졌습니다. 세계 최초이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수교로 현대적인 맨해튼의 상징이 된 브루클린 대교 위에서 행진은 보기 드문 모습이기도 한 동시에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은 쉴새 없이 화석연료 사업 중단을 요구했고, 민주주의로 기후정의를 실현하자고 외쳤습니다. 관광객들과 행인들 중 많은 분들이 행진의 외침에 힘을 보탰고, 화답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소수의 외침이 아니라 모두의 외침이라고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행진이 끝나는 보로홀 앞에서는 청소년, 청년 참가자들이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자리가 펼쳐졌습니다.
루이지애나주에서 온 활동가 로이쉐타 오자네와 12살 딸 카메아는 지역사회에서 화석연료 개발 사업으로 인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걸프 연안의 액화 천연가스 건설이 진행 중인데, 카메아는 가스 사업의 영향으로 천식을 앓고 있었습니다. 카메아는 “내일이나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지 않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 수 있어야 한다“라며 “이건 옳지 않습니다. 화석 연료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이윤보다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합니다"라며 힘을 주고 말했습니다.
우간다에서 온 27세 활동가 힐다 플라비아 나카부예는 우간다와 탄자니아에 건설 중인 1443km짜리 동아프리카 원유 파이프라인 반대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나카부예는 “우리나라에서 기후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지 않은 위기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기온 상승, 가뭄, 산사태, 산사태로 인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집을 파괴하며 농장을 황폐화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햇볕 강한 더운 날 몇 km 걷는 행진이었지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청년들이 준비한 구호와 외침, 그리고 뉴욕시민과 관광객들의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거겠죠.
기후 행진이 사라진 날이 하루빨리 와서 청년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청년들이 거리에서 기후를 위한 구호를 외치지 않는 그때라면 뉴욕기후주간이라는 행사도 없겠고, 기후위기의 그늘에서 모두가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날일 테니까요.